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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6 14:31:23
kwsi
삼각계주 토크쇼 3주차(6월 26일) 속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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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차 속기록 – 2012년 6월 26일(화)
사회자: 홍찬숙,        발표자: 정용숙, 한영미, 윤정은

사회자 오늘은 3번째 시간인데요. 오늘은 참석자 수가 많지 않으니까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도 해도 될 거 같아요. 저부터 하자면, 홍찬숙이구요. 소속은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책임연구원. 한국여성연구소와의 인연은 오래됐지만 밀도는 높지 않죠. 시들한 연인관계처럼. (웃음) 어쨌든, 발표할 세분 소개 부탁.

정용숙 저는 연세대 사학과 강사로 있고 연구소에서는 운영위원., 서양사-독일사 전공. 논문은 노동자 가족 역사에 대해서.

한영미 저는 오가니제이션 모리를 운영하고 있는 영미입니다. 저는 하자센터에서 99년부터 일하다가 흘러흘러… 청소년기관으로 시작해서 여성들과 함께 사회적기업을 만들게 되었어요 또 이주여성들과 일을 해서 그 일을.

윤정은 지금은 여성주의저널 일다의 기자로 재직. 20대에 취재기자로 일한 경력. 그 이후에는 사진 프리랜서. 2004년에는 이라크전쟁 안에서 내전사람들에 대해 보도. 그 이후 슬픔은 흘러야 한다라는 책 출간 2005년. 이번에는 20대 초반에 탈북 실향난민들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최초로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인 13인의 기록을 소설화 한 오래된 약속 출간. 반갑습니다!
(일동 박수)
(모두 돌아가면서 자기소개)
소장님 다들 누군가를 위해서 다들 와 계십니다.누군가를 위해 일하시는 분들의 속내를 들어보고 힘을 얻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시기로 하셨는데, 대학에서 성적마감일이 곧 다가오게 되면서 못 오시는 분들이 많네요. 떡 가져오신 홍 박사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김미경 사회복지 전공했고, 저는 이남희선생님 인연으로 오게되었구요, 이주여성센터에서 4년정도 일하다가 잠시 쉬고 있고, 마을 만들기에 관심이 있어 아까 소개에서 솔깃했는데요. 같이 일하면서 소진되었던 것, 연구보고서를 ‘소진’에 대해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마침 기회가 되어서… 직원들이 일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어서. 위치는 경기도에 있구요. 오늘 좋은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사회자 흥미진진한 장이 될 것 같아요. 체험에 대한 자신의 느낌, 경과들에 대해 성찰한 바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시간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먼저 정용숙선생님부터 듣기로 하죠. 각 15분씩입니다.

정용숙 제가 말씀드릴 부분은…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최근 다문화정책이 더욱 다문화가정들을 힘들게 한다는 뉴스기사가 있었어요. 다문화정책에 대해. ‘다문화’에 대한 단어는 오래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생긴 거고, 제가 보는 독일 같은 경우는 다문화가 형성된 배경이 다릅니다. 미국 같은 경우는 자발적 이민으로 발생. 독일 같은 경우는 정부가 이민자들의 형성 지역을 정해서.
어떤 책을 봤더니, 한 여성은 ‘이스탄불에서 베를린까지는….. 그러나 우리는 삼천년의 시간을 건너온 것 같았다’.라고 했습니다. 통계상으로 보면 독일은 최대이민국이고, 과거의 제국주의였던 영국이 많지 않을까 생각하지만요. 독일인들의 조부모, 그 이전 조부모 중 하나가 이주민 출신이구요. 푸랑크푸르트 같은 대도시에는 40퍼센트의 사람들이 이주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클라우스 바데라는 사람은 벌써 30년전에 독일은 원치않게 이민국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한국하고 비슷한 점이라면, 독일인들도 독일안에서는 독일인하고만 사는게 익숙했었다고 해요. 2차대전 이후 냉전구조 속에서 독일이 서방진영의 방파제역할을 하고 있었거든요. 미국은 마샬프랜으로 독일에 돈을 쏟아붇고 나일강의 기적이 나올 수 있었던 거구요. 노동력이 부족해져, 독일 정부에서는 기혼여성들도 노동시장에 끌어들이려 했고, 이어서 외국인노동자들까지…. 1페이지 아래의 gastarbeiter라는, 손님이라는 뜻이구요. 오일쇼크가 일어나면서 70년대에 장기정 침체였고 이러한 손님적 노동자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73년 이후에는 새롭게 노동자를 데려오지않으려고 했습니다. 독일정부는 인도적인 이유를 고려하면서 돌아가기만 한다면은 정착자금을 주겠다고 회유를 했지만은 억지로 하지는 못했죠. 이런 점이 한국정부와 다른점.
그리고 이러한 노동자들은 고국에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에 직계가족에 한해서 독일정부가 초청이민에 허가를 내주었구요. 73년 이후에는 외국인 문제, 특히 가족 단위로 들어오는 이민자 문제로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이때 이후 바로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부정적인식이 시작되었음(가족까지 부양, 데려온다는 생각) 2패이지에 보면, 이전까지는 주택이 아닌 기숙사에 살았는데 가족을 데려오면서 도시안에서 집값이 싼 주택에서 살면서 게토가 형성되었음. 이러한 지리적 고립을 통해 독일사회에 통합되는 과정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음. 주류사회 입장에서하는 마음에 안 든다는 점.
또 하나는 터키이민자 출신 아이들이 게토에 살다보니 학교를 가도 독일어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결국 2개국어를 할 줄 알지만 문맹이 되어버리는 현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직업교육도 받지 못하고 결국에선 사회의 거대한 아웃사이더가 될거라는 걱정등… 이렇게 독일인 대 외국인이라는 대결구조. 또 하나는 피임약 보급으로 출산율 감소에 대한 걱정. 가령 91년에 구서독 지역만을 가지고 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신생아의 10퍼센트 정도가 비독일인으로부터 출생되었음. 최소한 1.4퍼센트의 출생률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터키인들의 출생률은 거의 3퍼센트였기 때문에 터키인들이 젊은 인구를 채울거다 또는 반대로 인종차별주의적인 관점도. 터키인은 15퍼센트 외국인 차지. 다른 외국인 출신들도 있었지만 (폴란드 등) 터키인들은 외모적으로 구별이 쉬었기 때문에 문제화됨. 터키출신 이주자 가족에 대한 독일의 스테레오타입들. 아이들을 많이 낳는다, 이슬람적 전통, 가부장적이다(히잡이나 강제결혼 등) 같은 스테레오타입.
예를 들어 학교에서 사라진 터키 소녀… 알고보면 결혼해서 학교를 그만둔 경우.
히잡 같은 경우는, 어떤 여성이 히잡을 쓰겠다고 학교에서 선언후, 학교에서 해고된 예. 헌법재판소에서도 패소한 여선생. 이것을 맹렬하게 공격한 사람이 xxx  그만큼 단순한 인종차별적인 것이 아니었음. 이어 사이비 똘레랑스라고 까지 부른.
이러한 스테레오타입 형성이, 단순히 무슬림이라서가 아님. 이스탄불은 원래 굉장히 자유롭고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큼. 그런데 이민을 간 층들이 농촌의 세련화되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터키사회는 계속 변하지만, 독일로 간 이민자들의 전통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더 보수적으로 보여지는 것임. 단순한 종교 탓이 아니라는 것. 시간이 거의 다되었네요 (웃음) 마지막으로 독일의 여성부에서 이주노동자를 특징으로해서 가족보고서를 펴내었는데요, 다문화결혼에 대한 변화에 대해, 다문화가정 출신 배우자와 결혼하는 것에 대해 독일인들의 반감이 큰 것을 볼 수 있었음. 아웃사이더들에게는 결혼이 주류사회 편입이 가장 쉬운 통로였기 때문. 독일 사회의 입장을 생각할 필요가 있음.  또 한편으로는 터키 이주 2세들. 거의 독일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터키에서 신붓감을 데려오겟다는 경향이 높은데 이것은 민족주의 보수화라고 저는 보는데요. 노골적으로 주류사회에 통합되기 싫어한다는 강한 의지를 볼 수 있음. 또한 1세대들이 은퇴되는 나이가 지금 되었는데, 지금은 이민자 노인들의 문제가 노인문제의 1/3이 됨. 그들(이민자 노인들)은 아직도 독일어에 능통하지 않기 때문. 이들의 요양문제 부양문제 등.
마지막 6페이지 같은경우, 한국의 다문화형성 과정은 독일과 다르죠. 한국 같은 경우는 이주노동자관리를 워낙에 비인도적으로 철저하게 하였기 때문에. 독일과 다르게 ‘결혼’을 통한 유입이 많구요. 독일도 처음에는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한국은 어떻게 될지.
노동자 문제가 이주자문제로 전환 될 때 그들의 고통, 그리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입니다.

사회자 남의 나라 얘기다보니, 좀 더 이주민의 입장에 서서 듣게 되는 것 같아요. 입체적으로 개입이 가능할 것 같아요.

한영미: 제가 뭔가를 시대배경으로 이론적으로 여성들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앞서 내용이 도움이 되었다. 일로 만난 케이스가 많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자센터를 시작해서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데, 청소년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롤모델 한국판 피프틴을 만들려고 하다보니 쉐프는 필요하고 제이미 올리버 같은 스타 쉐프를 찾기 시작했는데 스타 쉐프는 많이 있지만 요리를 가지고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이 흔치 않았다 그래서 모인사람들끼리 하자 그리고 주로 여성들이 모이게 되었고 청소년관련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성들 중심으로 모인 , 단절된 여성들의 문제, 결혼이주여성들이 뭔가 자립하고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했다. 이런 이주여성들과 함께 공동체 일을 진행했으면 좋겠다. 현장들을 투자하는 정책기관과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시작할 때는 두려웠다. 전문가가 하나도 없는 곳에 이주여성과 함께 한다는 것이 의사소통에 문제를 일으켰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사회적 기업을 만들 수 있을까? 이 일이 너무 앞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끗만 바꿔서 생각하면 이 땅에서 자립해서 사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시작했다. 고용부터가 아닌 사람대 사람으로 준비시키고 고용했다.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으면서 좀더 폭넓게 고용실험을 할 수 있었다. 정말 얼마큼 고용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이주여성 아닌 참여자 모두를 고용할 수 있었다. 고용한 이후  삶에 가장 큰 문제는 육아문제였다. 이주여성은 대부분 젊고 20대 초반, 15~20살 이상의 남편과 나이차이가 났기 때문에 2세에 대한 급한 마음이 있고 언어와 문화적 차이가 있으면서도 육아문제를 갖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직접적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가 21개월 되었는데 취업 후 아이를 맡기고 왔는데 아이가 잘 노는지 걱정이 되어서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어린이집에 맡긴 아이가, 다문화 아이기 때문에 그 아이를 케어할 수 있는 전문기관이 없어서 그 아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 아이는 은연중에 왕따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한 다문화 이주여성을 고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자센터와 고민하여 어린이집을 만들어 직장어린이집 개념으로 만들었다.
아이를 편안한 곳에 맡기면서 그 여성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여성이 중심이 되면서 잘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힘든 부분도 많았고 후속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고민했을 때, 어떤 환경이 필요한가, 직접 해결한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실은 3년운영하고 문을 닫게 되었다. 작년 12월에 문을 닫게 되었다. 어린이 방을 오픈할 때는 이 것을 끌어 안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분산하자 라고 생각했는데 준비가 완료된 상태에서 나간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운영을 그만두게 되었다. 부천에서 어린이집을 연계해서 하려고 했으나 협의가 어렵고 다른 지역에서 운영한다는 것이, 현장에서 뿌리내리기 위해서 사례, 지역사회로 들어가는 문제가 어려움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3년을 어린이 방을 하면서 많이 지형이 바뀌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면서 열정을 다해서 노력했던 것이 보였다. 이주여성들이 전문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주여성들을 8명 정도를 최다 고용했는데 지금은 2명정도 남았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이 다름, 이주여성들의 다문화 비즈니스로 풀어보자 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오요리 라는 것이다.
식단이 풍성해 지고 다문화 메뉴를 만들어서 계속 해왔으나 부딪히는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었다. 아이도 봐야 하고 언어도 해야하고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배려를 했었다. 한국직원은 역차별이 생기기 시작했다. 굉장히 중요한 일에는 새벽에 나와서 일해야 하는데 이주여성들을 어떻게 진행되는지 직업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런 회사 내에서 조직내에서 배려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주여성을 위한 다른 여성의 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직업적 마인드를 배려라는 단어로 커리어를 채워주지 못했다. 일의 중심과 운영자 직업인의 개념을 갖게 하면서 이주여성들이 조금 더 직업인으로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이주민 여성들의 활동을 보면 서빙, 주방 등에서 하는데 일을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서 4~5개월 정도 되었는데, 이 분의 일자리를 지속 할 수 없어서 다른 일로 배치되었다. 또 다른 이주여성도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다. 여성의 문제들이 또 나타났다. 일을 지속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아주 구체적으로 발생하게 되었다. 이주여성을 채용 퇴사 를 반복하면서 다시 일할 수 있는 일터를 계획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주여성들이 오지 않게 되었다.
직업인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요즘의 정책은 여성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노동의 가치 보다는 다른 곳에서 돈 받으면서 공부하려는 이주여성들이 많이 늘었고 모두다 실적으로 하기 때문에 계속 교육을 지원해주는 그래서 기관의 실적으로 남기고 있었다. 따라서 오요리에서 이런 현상에 이주여성을 직업 찾아주는 일보다는 직업인으로서 성장하고 싶은 이주여성이 기다려 주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이주여성, 다문화라는 말은 안쓰면 안될까? 하고 생각하였다. 다문화라는 단어는 더 이상 쓰지 말자라는 생각을 했다. 다문화라는 단어는 못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에서 결혼을 통해 경제적인 해결을 위해 선진국가로 이주한 여성을 지칭하게 되는 단어가 되었다. 그렇게 때문에 다문화라는 단어를 “문화”라고 대안해서 쓰자는 생각을 했다.
언어가 주는 힘이 크기 때문에 그녀들을 지칭하는 단어, 언어부터 변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례로 여성학을 하던 사람들과 만나 배운 개념 중에 여성계 언니들을 만나다 보니 선주민 후주민 이라는 단어로 생각한다. 네이티브 라는 용어 자체에 원주민 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를 선주민이라고 말하면 이주여성들은 후주민이라고 칭하면 선주민은 후주민들에게 배려하고 가르치고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용어를 바꾸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발표하고 2부에 함께 같이 의견을 나눴으면 좋겠다.

사회자: 의견이 활발히 이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 책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재미 있는 것 같습니다.

윤정은:  탈북자 배경이 된사건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중국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한 최초의 사람들. 이들은 최초이기도 했지만 최초로 북한의 식량난을 알린 사건이기도 합니다. 제가 탈북자 관련 기사도 썼지만 기사가 한국사회에서 잘 읽히지 않았고, 이것이 인도주의적이다라고 호소를 해도 한국사회에서는 정치화된 존재였기 때문에. 그래서 공감이라는 것을 위해 소설이라는 형식을 택했구요. 탈북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념지향적 시선에서 벗어나길 바랬습니다.  97년도에 이들의 식량난 존재를 알고 보고서를 썼는데 남한언론에 가져가서 보도해야 되겠다 했을 때 진보적 언론이 보도를 할 수 없다고. 북한을 공격하는 보도로 보일 수 있다는 이유로 또는 북한을 좋게 묘사했다라고 보일 수 있다는 이유로. 6개월 동안 연재를 하게 되었는데 가장 많은 지지 그리고 비난의 전화를 받았다고 해요. 이러한 진보.보수 갈등 속 문제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음 2010년 8월에 집단망명신청을 했는데 그 직전에 황장엽씨가들어오게 되면서 6월에 거부가 되고, 따뜻한 나라를 찾아온 망명자와 식량난의 존재는 한국사회 에서 전혀 다르게 읽혀진다는 것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일부는 10년전에 써서 일다에 개재하게 되었는데, 저와 전에 같이 뜻을 했던 친구들이 먼저 읽었는데 대부분 친구들이 조선일보가 좋아하겠다고 해서 저는 굉장히 실망 했거든요.,(웃음)
이것이 뜨거운 이슈가 될 텐데도 계속 피해왔다는 것.
이 책이 나오고 나서 사람들이 올해 3월달에 나왔는데 그때가 중국대사관 앞에서 계쏙 집회가 있었다고 마침 때를 맞추었다는 코멘트들. 소설가xxx가 서평을 쓰고, 프레시안에서는 ‘탈북자를 죽이는 진정한 xxx’라고 제목을 썼었구요. 진보쪽에서는 장정일씨에 비난하는 기사가 실리고…
그래서 여지없이 이걸 내는동안 출판사 내에서도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고 해요. 이 출판사가 진보쪽을 많이 출판하는 데였는데. 사람들이 줄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잇었다고 해요.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진보보수 안에서 논쟁을 다루는 것은 어쩌면 정치인과 언론쪽에서의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 어쩌면 북한과의 따뜻한 관계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까 하는 사람들의 개인블로그를 통해 지지를 많이 받았구요. 그래서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고 느꼈구요. 특히 보수쪽 언론이 탈북자 인권을 여쭤보는데, 저는 식량난과 탈북자 인권문제는 별도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해요. 그럼 그들, 탈북여성은 누구냐. 제 책 마지막 문장 만금이라는 여성이 물어본 건, 당신은 왜 우리를 도와주느냐 라고 물어요. 그것이 제가 10년동안 계속 물어왔던 거거든요.  당시 3백만명 북한 식량난을 도와주자고 했을 때 이 수치를 가지고도 진보와 보수에서의 논쟁이 있었어요. 또 평범한 사람들은 ‘왜’라는 , 왜 도와주어야 하냐는 질문을 하는데, 저도 이 질문을 계속 고민했었는데. 이 책을 내면서 ‘왜’라는 질문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같은 한반도 땅에서 굶주림 때문에 3백명이 죽는, 그것도 한때는 형제였던 사람들에게 ‘왜’라고 묻는것자체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게되었어요. 그럼 우리는 ‘왜’라는 질문에 ‘왜’라고 하느냐. 만약 아프리카였다면 ‘왜’가 더 쉽게 답변이 되었을 텐데, ‘북한’이라는 단어가 붙어서 도와주지 말아야하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생기는거죠. 군량비로 쓴다라는 뭐 여러가지 이유들이 나오죠.
그래서, 어쨌든 새로운 시각. 기존의 북한에 대한 의심, 두려움 막연한 이러한 감정을 버리려면. 새로운 시각을 부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됐구요. 그거에 대한 답은 북한 사람들을 보면서 느꼈어요.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남한이들은 머리에 뿔을 어쨌냐고’ 물어봤었는데, 이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인거죠. 동거와 동행하는 과정 속에서 엄청난 갈등이 드러나는데 1부는 10년전에 썼고 2부는 최근에 썼는데. 제가 2부를 드러내면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는 지점들, 갈등들이 있는데 이걸 드러내는 것이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결국엔 드러내어 서로 이야기하는 것. 어쨌든 우리가 끝까지 동행할 수 있다는 것 드러낸다고 생각했는데요. 남한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끝까지 동행을 하지만, 북한사람들은 끝까지 의심하고 이해할 수 없는거에요. 안기부의 끄나풀이라고… 북한은 당과 xx가 통합되어있짢아요. 우리는 ngo라고 해도 그걸 이해할 수 없다는 거죠.
우리는 이들을 뻔히 다 알지만, 이들은 남한사람들의 정체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남한은 정부와 언론이 구분되어 있지만 그들은 그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마지막 강을 건너기 전에 활동가들을 죽이고, 마지막 의심을 없앤다고.
저도10년 15년이 지나서 이것에 고민했는데, 이 책을 쓰면서 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되었어요. 왜냐면 이들이 받는 교육은 우리가 인간말종이라고 교육을 받았고, 우리 또한 사회주의에 대한 불안이 있기 때문에 의심은 끊임 없는거죠. 우리도 삐라뿌리고 정치선동하고 하는 분들을 보면, 북한의 평범한 사람들도 그 의심과 두려움을 끝까지 내려놓지 않다는 것….. 그럼 어떻게 해결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죠. 그 이후에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교류가 있으면서 부대끼는 과정…. 최근에는 북한을 많이만나온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 무지했던 15년 전에 비해서는 북한 남한 서로 물론 전부는 알 수 없지만 정보가 있는 상태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분들의 남한생활 어떻게 하는지 많이 물어보시는데. 13인 중에 유일하게 정착에 성공한 주인공은 만금이 입니다. 일다에도 개재한 적 있찌만 제목은 ‘전쟁터 같은 남한사회에서 적응하는 것’이었던 것 같은데,. 남한사회가 더 전쟁터 같다는 것. 제가 물어봤어요. 남한체제 북한체제 중에서 어딜 선택하겠냐 물어봤는데 북한이라고 했어요. 그 언니는 학습이 굉장히 잘되어서 사회의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뚜렷하고 또 거기서 일을 잘해서 공로상도 받고, 위원장과 손도 잡고 울고 하는 추억이 있었구요. 북한에서는 또 동지애하는 것들이 있었고, 일단 남한사회에 비해서 정해진 시간에 딱 노동하고 집에가서 또 할일 하고 하는 것이있었다고 말해요. 하지만 남한사회는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쥐어짜는 것이 있으니까요. 또 북한 사회에서 배급만 제대로 되었어도 거기가 더 자신에게 맞고 이미 적응을 했기 때문에라는 얘기도 했었구요.
최근에 탈북식량난민 인터뷰를 하면서 만났는데, 대부분은 중국에 가고 싶다고 얘길 한다고 해요. 남한사회에서 적응이 힘들어서. 처음에 봤을때는 초등학생밖에 안되는 여기에 대한 정보밖에는 없으시고 직장문화도 다르고…. 또 노동자를 경시하는 문화가 가장 힘들다고 (그 만 금언니느)
그 언니는 청소노동에 대해서 학교에서 굉장히 많이 배웠는데. 여기서는 경시하는 문화이고 여기는 썪어빠진 거에요(웃음) 기숙사에서 일을 하시는데 사람들이 아무데나 공공물품들을 마음대로 쓰고버리고 하는 …. 이 언니느 따라다니면서 학생에게 뭐라하고… 또 학생들은 건의함에 이 언니를 고발하고…. 그러니까 쉽지 않고 분노가 한번씩 올라오고…
그래서 어쨌든 이 언니가 우리와 문화가 비슷한 중국에서 살고 싶다고 하는데. 그 언니와 제가 하는 동시적인 얘기가 ‘집에 가고 싶다’라는 얘기였어요. 고향이가고 싶은거죠.
그리고 지금은 남한에 정책했다가 실패해서 제3국으로 가는 분들도 많다고 하더라구요.
또 이 소설에도 썼지만, 이 사람들이 실제로는 어떤 배고픔을 피해 남한까지 왔지만 그 과정이 쉽지가 않구요. 중국에서 머무는 시간, 국경을 넘는과정도 그렇고. 저는 그게 어떤 설명하기 힘든 ‘이주의 경험’을 남한사회에서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것들이 좀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구요.
또 이들 마음 속에는, 북한 사회가 굉장히 이념적으로 통일된 사회이기 때문에, ‘조국을 배신했다’라는 인식…. 물론 약삭빠른 사람들이 있겠죠.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죄책감이 굉장히 뿌리깊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남한사회에서 잘 살아보고 싶은 북한에서 어렵게 살았던 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북한사회에서 탈북한 것이 배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령님교시를 다 외웠는데 그것을 다 배반하고 자기 욕망을 처벌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다. 그들의 인권을 탈북자의 인권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탈북자들의 인권을 이야기 하는 정부는 탈북자들의 죄책감을 이용하기도 한다.


사회자: 어떻게 보면은 탈북한 사람들은 국제이주여성들보다 더 격차가 심해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오늘의 강의를 듣고 생각한 것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쉬고 난 다음 이어가도록 하자.

(5분 휴식 후, 2부 시작)

저자 싸인을 받고 싶다면 좀 기다려주세요. 이따가 하겠습니다. 문화적 격차가 있는 사람들 끼리 어떻게 공감을 할까에 대해서 이야기 했으면 좋겠습니다. 보통은 발표자들의 시간을 갖는데 플로워랑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참여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읍시다.

여성주의 일다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조이여울입니다.

강정숙 연구소 멤버이기도 하고 여성정책연구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강정숙 일본국 위안부 주제로 피해자 진상위원회 상을 받았어요. 강만기 선생님이 재단에서 근 현대 박사학위 논문 중에서 지원금 상을 받았습니다. 박사 후 과정을 신청해서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안됐어요

아이 낳는 것과는 다르게 상 주는 것은 축하해도 될 것 같아요.

이제 막 친해지려는 단계 인 것 같고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고민하는 단계 인 것 같습니다. 안다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많이 배웠고 지금 남북여성 합창단에서 겪는 문제는 10년 15년 전에 훨씬 더 경험의 폭이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가 있을 것 같다.

한영미: 저는 직장 내 단면적인 면만 봤다면, 아까 말씀하신 건 심각한 것.에피소드 중 하나는 엄마들이 다문화 감수성, 마인드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으시잖아요. 아이가 그것을 가지고 크는 것에 대해 굉장히 고무적으로 생각하세요. 하자로 오시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계시구요. 다문화 아이들과 같이 크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고. 프로그램으로 굉장히 풍성해서 좋아하셨지만 막상 아이들이 커서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고?(웃음) 한 아이가 다른 다문화권 아이와 결혼한다고 하면 결혼하게 허락할 거냐 했는데 막상 그거는 아니라고 하는거죠. 그 아이의 가정환경, 결혼이주의 배경을 너무 잘 아니까 안된다는거죠. 그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했는데 2010년에 제가 저희직원 마리아와 나가서 그런 얘길 했는데, 다 공감하는 얘기라는 거에요.  이게 현실이고 더 심각하게는 사회가 양극화되고 또 아이들이 학력자본, 경제자본 없는 부모 밑에서 자라게 되고… 낮은 진학률과 함께, 그리고 결혼문제에 있어서도 그렇구요.
그래서 이주여성들과 제가 얘기하길, 아이들이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당신들이 정신차려서 잘 키워내어야 한다고 했어요. 엄마들이 직장에서도 낮은레벨이 아닌 언어공부와 함께 자기 레벨을 올려가야지 아이에게도 떳떳한 엄마로써 될 수 있다고요. 이것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저희는 이주여성들을 보면서, 억지로 뭘 하기보다는 전사회적으로 자연스러운, 마을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러지는 자연스러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직업교육이나 자립에 몰입하기 보다는 오픈된 커뮤니티를 만들려고 해요. 내 일과 삶이 구분 되는 것이 커뮤니티로서의 장이 되었으면 하고.  고향 없는 청소년들이 커뮤니티를 베이스로 한 일터이자 고향이 되게 하는 슬로비라는 카페를 만들게 된것도 그러한 배경이거든요.
사실 충격적이에요, 선생님 말씀 들으면서. 아주 보고싶지 않은 상태까지 가서…. 그런 부분들이 실제로 더 심각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쉼터 선생님    저도 그걸 얘길했는데, 베일에 쌓여있거든요. 시청을 중심으로 드러내려고 했는데, 직원들이 그런 마인드로 일할 수 있냐고 해서, 다 입을 다물게 되는.

사회자: 남자들 사이에서 성추행을 당하기도 하고, 그러니 분노의 감정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탈북여성 케이스는?

윤정은: 같이 토론하는 장, 여론 프로그램 발제식에 제가 갔던 적이 있었는데. 전날 오라고 그 여성들에게 했더니, 그분들이 전화해서 돈 얼마주냐 식사는 뭐가 나오냐 이런식. 윤정은 : 대표성을 부여 받은 것은 아니지만 돈 얼마 주냐? 식사는 뭐가 나오냐? 전날 세팅이 되었는데 전날 노래 불러야 겠다. 라고 이야기가 나오면서 행사와는 관련없이 1~2곡 부를 줄 알았는데 7~8곡 불렀다. 이것을 찍으시오 라고 활동가들은 매우 어려움을 겪는다. 기행떠나야 하는데 취소하는 사건들도 있었고 행사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어려울 때도 있다.
예전 단체와는 다른 김밥과 샌드위치가 나올 때는 많이 불만을 표했다. 그러나 잘 보면 남한 사회가 이들을 길들였다. 기존에 보수단체는 교회는 나름의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정말 자신의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 지역을 다시 적응하는데 어렵다. 집문 밖에 열고 나가는 것이 어렵다. 라고 말하는데 그 의미는 익숙한 곳에서 떠돌아 다닌 경험이 있다면 한 개인이 다시 조직되는 시간이 필요한데 탈북한 여성들은 더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정토회는 탈북자들을 돕는 기관으로 오래되었는데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하는 정토회 활동가들이 탈북자들 마음속 깊이에는 남한사람들에 대한 불신감이 있다. 라는 표현을 했다. 또 활동가들은 탈북자들은 인간 말종이다 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탈북자 중 친한 언니는 중국에서 경험한 불안한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생존 위협을 듣는데 법적으로 신분이 증명되지 않는다면 심지어 일을 해야 할 때도 돈을 주지 않는데 돈을 달라고 항의하다가 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탈북자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갖기도 하면서 비슷하면서 다르게 이주여성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녀들을 그녀들의 상황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감하기는 어렵기도 하다. 나름대로 종교적, 공동체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종교를 가지고 온 사람들은 그저 저 개인적인 주관이지만 종교를 갖고 있는 탈북자들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을까? 비약이든. 비 이성적인 해결방식이라도 뭔가 도움이 되기도 했다.
생각을 해보니까 남한에서 아줌마 아저씨들도 김밥주면 성질부리는데 혹시 윤정은씨가 좀 특별한 게 아닐까?

윤정은: 그게 저 사람들에게 맘을 더 주고 그런 것 같은데, 그 위치 부분에서 비슷한 인간적인 부분들이 있지만 공통적 상황이 보인다는 것이다.

쉼터 선생님: 선생님과 이주여성 쉼터 특별함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쉼터를 이용하는 그냥 이주여성  일반 참여하는 여성과는 성격적으로 다름이다. 그걸 비교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사회에서 부부의사소통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와 쉼터 여성을 대상으로 했을 때는 어 다르다 쉼터로 오는 여성과는 다르다고 했는데, 끝이 같았다. 제 개인적인 주관이지만 이거 안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했다. 민족주의적 편견이 심해졌다. 니 가 여성 다문화여성을 데려온다면 나는 싫다. 라고 말했다.(웃음) 정책이 따로 가고 있기 때문에 서비스 제공이 현장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은 의미가 없다. 실적이라는 것이 어떻게 프로그램을 진행해서 자존감을 어떻게 향상했고 어떻게 자립했다가 아니라 얼마나 이용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적으로 대치되기 때문에 힘들다.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오는 활동가들이 정말 많다. 봉사를 하면서 이들을 위한 일을 하면 보람되겠다 해서 왔는데 정책차원과 실제추구하는 것이 달라서 힘들었다. 이주여성이 국제 결혼으로 오는 결혼의 첫 과정이 돈이기 때문에 목적이 돈인데 교육 시스템을 밟아서 어떤 목적을 갖게 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 기다리는 것은 힘들다. 스스로 다 길을 찾아 나가기 때문에 전문가를 찾는 것 보다 돈의 목적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정책이 따라 갈 수 없다. 그 외 도덕적인 면이 있다. CCTV 했더라도 다른 곳으로 가려고 수단이 되기 때문에 밖에서 남편을 피해서 오는 곳이기 때문에 발생되는 생각에서 오는 도덕적 관념이 다르다. 언어는 당연히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이주여성은 장애인이다. 정신지체 신체적 지체가 다이다. 쉼터를 들어오는 처음부터 끝까지가 항상 동행이다. 살림부터 모든 출입국 관리소까지 동행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활동가의 업무가 힘들다.
자기네 나라 여성들을 경험해 보고 다시 돌아가서 자기 혼자만 힘들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추후에 잘 살게 된다. 결국에는 이혼으로 돌아올 때 활동가로 일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상담전화 외 위급상황이 발생될 때 활동가를 찾는데 일이 이혼으로 가는 길을 도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지역사회에 잘 살고 있는 다문화 가정을 봤을 때 활동가를 찾는 이유는 곤지암에 13팀 정도 베트남 다문화여성으로 되어있는데 7년 정도 생활하고 있는데 1달에 1번씩 만나는 모임에서 소소한 수다를 떠는데 그 일을 경험하면서 다문화 여성의 남편들은 여성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어떠한 것이 없는데 이 여성들이 즐겁게 지내면서 도박(포카)을 하면서 즐거움을 찾는 여성들이었다.(이런 여성이었던걸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한글에 대해서 갈급함이 없어졌다. 조성이 잘 되었다. 이주여성들에 대한 정책적인 것들이 잘 못되고 있으니까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간입장에서 상당히 힘들었다. 이주여성 상담원 대부분이 자격이 필요하지는 않는데. 가정폭력상담원100시간이면 쉼터에서 근무할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활동가들은 근무간의 전문성을 갖기가 어렵다. 배려심이 많은 활동가들이 있는 쉼터는 온정주의들이 많고 이런 온정주의들이 서비스가 결국 그녀들에게 엄마입장이 되는데 엄마(배려하고 모든지 감싸주려는)서비스가 되다 보니 너무 힘들다.

한영미: 해외에는 의무교육이나 시스템이 되어 있는가? 여기에 정착하려면 여기의 언어를 모르면 어떤일을 노동자 계급에서도 멈출 수 밖에 없다. 당신이 한국어 실력이 여기서 멈추면 안된다. 약속한 것은 한국어 실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자 라고 했었다. 그게 정책적으로 다른 지원이 아니라 의무교육 시스템이 있어서 몇 년 안에 더 시간을 많이 투여하고 확인을 받게 하고 그 다음에 사회적 진출을 할 수 있게 하던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이남희: 최근에 캘리포니아에서 히스페닉 커뮤니티에서 사는 미국사람이지만 영어를 못하는 캘리포니아 주민이 시의원이 되었을 때, 시의원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면서 결국 시의원이 되지 못했다.  

합창단 패널: 그 이야기는 보수쪽에서 나온 이야기 이면서 정책적으로 이주민들은 영어를 배워야 한다고 한다. 그와 비견해서 저희 합창단에서 남한의 발성법을 가르치면서 북한의 발성법을 틀렸다고 말하면서 발성법에 문제제기를 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할 때 북한분들이  그런 지적에 어떻게 생각할 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남한사람도 같이 공감하면서 있다.

정용숙: 그렇게 주장을 하면 우파의 주장이에요. 독일에서는 그렇게 독일의 다문화 정책이 실패했고 이민자들이 어떤 이유가 되었든 독일어를 유창하게 해야 하면서 그것은 의무교육으로 할 수 없다 강제로 어학코스에 끌어 올 수 없다. 터키에서 이주한 여성이 10년동 안 독일어를 배우지 않았었다. 독일 정부가 무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필요성을 크지만 강제적으로 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남희: 관용이라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정용숙: 멀티컬쳐에서 리딩컬쳐는 독일 우파는 양보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우파의 담론에서 나타난 것이다. 멀티컬쳐라고 말하는 한 그것을 대변하는 멀티컬쳐로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타자로 만들어 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쉼터 패널: 이주여성들이 원하는 것을 보면 한국사람들은 다 들어줘야 한다. 선물을 주고 더 좋은 것을 바라는 것은 표면적으로 티가 많이 납니다.

한영미: 자기의 의지에 의해서 무엇인가를 하려면 그에 따른 동기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이주민들은 국가에 신청하면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하지 않을까.

정용숙: 무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많이 제공하고 있어요.

한영미: 대학교육처럼 배우는 언어사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놀러 온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목적이 있는 이주여성 이주민들을 배려하는 것은 어렵다

패널A: 이주라는 단어가 그 지역에 뿌리를 둔 회사이기 때문에 지방 단체 에서 회사에 권유하기를 이주문화를 제시했다. 그러나 용산이라는 지역적 특색 때문에 일자리를 줬으면 좋겠다고 정책적으로 취약계층으로 일자리를 나눠야 하고 일부 4~5명 정도 일자리 여유분에 사람을 채용해야 하기 때문에 결혼 딱 탈북자라고 말할 수 없으면서 연변인, 홈리스들 가장 취약자계층은 이주여성은 이렇게 다니면서 돈을 받으면서 직업을 가질 필요성이 없고 홈리스는 가난한 사람은 자신이 멀쩡하고 가계도 성성한데 기초 생활 수급자로 되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이 많다. 기초 생활 수급자 타이틀을 받는 것이 국가 정책적 인텐시브가 크기 때문에 사실은 일을 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생각한 정책들은 그들에게 더 많은 인텐시브가 있기 때문에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용숙: 이주여성의 취업의지에 대해서……( 말이 끊김)

상담소분   그렇지 않아요. 이주여성들에게는 굉장히 풍부해요..   저희는 남는 게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정부에서는 다 써라는 식이에요

정용숙   독일에서도 그런 상황을 봤어요 한 친구가 묻더라구요. 베트남 여자들이 왜 오냐고. 나중에 보니까 그런게 양쪽 다 처음부터 알고시작하는 거죠. 베트남 여자들은 일을하려고 오는게 아니라 결혼하려 하는거고 친정에 돈을 보내준다는 암묵적 동의로 오는거고. 독일에서는 결혼을 안해도 동거가 있으니까요. 하여튼 짝이 있어요. 짝이 없는 건 독일에서 굉장히 소수고, 그런 분들이 국제결혼을 해요. 그런 분들은 애를 낳아라 그런 게 아니라 한국과 다르게 짝으로서 사는 거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주여성들을 취직시켜야 한다고 생각 안했는데, 지금 이런 얘길 들으니까 이제 제가 알게되었어요.

상담소 소장 예를 들면 두산 명예회장님이신 분도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있잖아요. 그런 경우도 베트남 또는 필리핀 여성을 데려왔잖아요. 모든 교육 차원이 다른 경우였거든요. 결국은 한글이 딱 마스터 되어 어딜 가고 될 상황이었는데 결국엔 집을 나갔거든요.

사회자 이건 국제적으로 유명하더라구요. 제가 어디 해외가서 한국 다문화 얘길 하면 놀라는게 왜이렇게 다문화정책에 돈을 쓰냐는 거에요. 또 아까 불현듯 생각난건 실업급여가지고 인터뷰한 적이 잇는데 실무자들이 하는 말씀이 지금이랑 비슷해요. 실무자들이 고갈되는…. 그러니까 도와주려고 하면 빠져나가서 딴 데 가고 그러는…. 일자리를 줘도 말이죠.,

윤정은 근데 저는 다른 관계인게요, 전혀 다른 문화분들이라면 또 다르겠죠 근데  탈북자 같은 경우에는 진정한 친구이웃으로 얘기되기까지는 정말 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가치관도 맞아야 하고. 한국사람조차도 그런데 전혀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건 아닌가 싶고. 또 속도도 다를 것이구요. 어쨌든 거는 기대도 크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예전 북콘서트한다고 뭐 문화기행한다고 … 그런것도 웃음이 나거든요. 노래를 일곱번까지 부르고….(웃음) 전날 자기네들 시간마련해달라고 하는것도 웃겨요. 근데 활동가 입장에서 정말 머리 아픈거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근데 쉽지 않을 것 같구요. 서로 고마움을 알고 나눈다는 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기대를 낮추는 것이….(웃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때문이잖아요. 그들이 한국에 와서보면 화폐격차도 크고… 그러니까 한국사람이 당연히 봉일수밖에 없고… 그들이생각하기에는 태어나면서 많은 걸 가지고 태어났으니긁어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거고. 저는 근데 그런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집을 나갔다는 여성이야기요. 그러니까 아까 신뢰가 없다고도 하는데. 그런 불신감과 잘사는 나라에대한 적대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일다에서 속은적이 있었는데, 정말 믿음갔던 네팔 활동가가 속이고 기자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그때 보면 정말 그 사람들은 자기네 민족끼리 뭉쳤을때는 거짓말의 개념이 아니라 일단은 이렇게 저렇게 하고보는…. 그러니까 약자라고 생각되는 분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기대치를 낮추어야 된다기 보다는…


패널A: 초이스 이런것도 저런 것도 인텐시브에서 정책적으로 많이 보안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일반 기업도 있고 사회적 기업도 있고 사기업도 있는데 굳이 사회적 기업이 안 되도 할 수 있는데 제대로 된 근로자, 취약자들 에게도 일을 주려고 해도 전문적인, 일을 하려고 노동자들은 있겠는가. 그것이 절실한가에 대한 것들이 필요하다.

홍찬숙 : 시댁 식구들 모두 미국에 갔는데 살아가면서 주변화 된다. 본인들이 처음에 갔을 때 미국사회에서 소수민족으로 자부심이 있었는데 자부심도 없어지고 한국사람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이유가 없어지면서 한국사회에서도 이민을 왔다는 그 이유로 성공한 분들도 많이 있지만 가끔 황당 무게 한 것은 큰 돈 들여서 미국대학에서 공부하고 결국 그냥 주변화된 이민자 정도로 남겨지게 된다. 여자이기 때문에 ,.. 이민자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어떤 것들이 있다. 영어도 잘하고 그러는 데도 주류 사회로 밀고 들어가는 힘들이 생기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는 나름대로 학력도 높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는 이게 한국정보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정책이 관대한 적이 한류에 대해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 있다는데. 제가 미국에서 믿어지지 않았다. 중부에 도시긴 했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이 없었는데 뉴욕에서 한국사람들이 한국 백인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열등하다는 사람들에게 자족감이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유럽이나 다문화주의가 뜨니까 따라하는 것 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한국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니까. 다이나믹하다는 점은 맞는게 어떤 정책을 만들더라도 그것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그 걸 알뜰하게 참 잘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욕망이 없는 건지? 독일사람들은??

윤정은 : 근데 다문화정책이 관대한 것 같다. 다른 문화에 대해서 관용적인가? 저는 그것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이해자체도 하지 않으려하고 남성적인 가부장적인 것은 타협없음인데 이 시해적인 것이 가부장적인 어떤. 모계문화를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 아닌가?
만금 주인공에게 이 책을 주려고 갔는데 탈북자 중에서 정착을 잘한 케이슨데 이 여성이 탈북에 대해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여성인데 최근에 남편하고 갈등. 아이는 없는데 굉장히 주체적인데 성에 대해서 한국사회보다 개방적인데 국경부터 어렵게 살았는데 그것보다 남편이랑 사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우리가 생각한 인신매매와는 다르지만 저희 결혼, 매매혼으로 생각한다. 결혼이라는 신분으로 정착하지는 않지만 중국에서도 매매혼으로 살았다. 한국남자들은 사람을 옭아매는데, 또 다른 사례는 남편이 여성으로 주체적으로 하려고 할 때 남편이 자제 하는 것이 많았다. 남한남성의 봉건적이다. 가부장성이 있다. 할 일이 많은 남한 사회에 대한 것들. 모계사회에서 살던 베트남 여성이 이해할 수 있을까? 빠른 변화를 보이는 한국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탈북여성에게 납득이 될 수 있는가?

글로벌 젠더 갭 한국보다 성별격차가 높다. 베트남인 경우는 대부분 한국을 아는 것은 드라마에서 본 것이 대부분이며 그 나라에서도 부류가 아래쪽에 있는 여성들이 오지 않는가?
요즘 이민자들이 재혼여성들이 많고 재혼한 여성들이 20살 정도 되는데 노인케어가 곧 멀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성들의 나이가 높아지고 있다. 36세이상이민자들은 평균수명이 2년정도 짧아진다. 청소년 문제도 심각하지 않을까? 거대한 아웃사이더 모든 다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사회적 기업에서 노동자로 이야기 하는 것은 바람살라 티벳여성을 지원해주기 위해서 공장 가내수공업을 열었던 사람이 기사를 줬는데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데도 여성들에게 똑 같은 걸로 만들어라 했는데 티벳여성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었다. 동시대에 살아가고 그런 세계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데 그것을 납득 시키는 것이 어려웠는데 그것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런부분들 여기서 사회적 기업을 이만한 속도로 해야 한다고 한다면 이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힘든 일인 것 같고 관리해야 하는 활동가 입장에는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일자리가 그 환경에 맞게끔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자리에 사람을 넣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이 만들어져서 그들이 선택하고 일할 수 있도록 한다. 부분적 경과적 일자리 등등으로 가기 시작했는데 사회가 좀더 성숙해지려면 다양한 일자리 자기가 해야 하는 육아나 공부해야 하는 것들 내려놓지 않고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당면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자:제가 중간에 멈추려고 했으나 /뜨거운 열기로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속기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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