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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6 14:33:07
kwsi
삼각계주 토크쇼 4주차(7월 3일) 속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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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주차:예술.창작.실천.먹고살기 2012년 7월 3일(화) 속기록.

이남희 소장님 오늘 화요토크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은 황금선씨꼐서 뽕잎차와 개떡을 준비하셨습니다. 오늘 신경아 선생님이 사회인데 날씨 때문에 제가 시작합니다. 오늘 볼 사진도 많고…. 시작하겠습니다.(박수) 김희원씨는 팅이라는 애칭이 있구요, 황금선씨 소개부탁드려요.

황금선 사진하는 황금선입니다. 사실은 1시간 준비해야 하는 줄 알고 왔는데(웃음). 오늘 하루종이 개떡 만들었어요. 어제 식구가 하나 들었어요. 이름은 따리. 성은 보씨. 보따리라는 강아지가 새로 생겼죠. 딸인데, 오늘 천둥이 칠 때마다 제 다리를 붙잡고 친한 척을 하더라구요. 강의 취소할려고도 했어요 (웃음). 여러 분들이 발표하시는거라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편안한 마음으로 드시면서 봐주세요.
저는 예술이란 말은 잘 모르고, 별로 안 좋아하는 단어이기도 하구요. 예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귀족이 떠오르고 아니면 하루종일 화구를 등진 양반을 위한 환쟁이가 떠오르기도 하구요. 그러니까 아주 유쾌하지만은 않은 단어인 것 같아요. 뉴욕도 떠오르구요. 60,70년대만해도 대학노트만한 사진 전시가 있었고, 그것에 어울리는 소소한 사람들의 일상 한 순간들이 매직 같은 순간으로 변해서 대학노트보다도 작게 벽에 겸허하게 앉혀져서 전시되었던 시절들이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엄청난 규모의 전시장에 우리를 짓누르는 그리고 철학적 담론을 끌어내야 하는 것 같아요.
예술이라는 것이 사회적 이슈를 이끌어낸 경우도 많죠. 어떤 자가는 자기의 얼굴을 수없이 성형하기도…  많은 여론들이 자극시켜 만들어낸 것들이 작업이기도 했지만, 화려함으로 우리를 질식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술이란 단어에서 넘어가, 예술창작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저에게는 누구의 삶이 있지 않다면, 예술이 없어요. 어떤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사진을 빌어오는, 빌어먹는 사진가입니다. 그래서 부채가 아주 많아요, 필름이 쌓일때마다. 저는 아직 개인작업은 필름으로 하구요. 디지털로 하면 놀 시간이 없고. 필름으로 하면 매직으로 적어서 가방에 넣어다니고… 그럼 멋지기도 하구. 그럼 놀 시간도 많구요. 근데 디지털로 작업하면 카드도 비워야 하고, 불안하니 카피도 떠놔야 돼고…. 리터칭도 하게 되고, 파일이름도 바꾸게 되고… 그러다 보면 새벽 한두시가 되다보니 그 다음날 새로운 세상이 보이지 않더라구요. 아니면 그 다음날 빌어먹는 창작에서 빌어먹는 수확게임으로 넘어가요. 그래서 디지털보다는 필름으로 찍으면 그다음날 뭘 찍어도 상관이 없구요. 그래서 일도 필름으로 하고싶은데 스캔하다 보면 돈이 안되더라구요.
필름은 밤새 기운을 불어넣으면 돼요. 뭘 찍었는지 모르니까, 에이 (웃음) 아니면 현상을 탓할 수도 있고. 또 아름다운 2차발견의 순간이 있지요. 본인도 놀라운 순간이 올때가 있어요.
그리고 계속되는 충돌, 만남의 순간을 주는 매체인 것 같아요, 사진이라는 게.
그렇게 다른 이들의 단면을 빌려온 사람으로써 부채를 갚아야 하는데 그게 저에게는 실천이라는 것인데요. 이미 소통이 3분의 2이상 가로막힌 사회에서 소통만으로 실천을 해야 하는 저희들에게는 무기력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강가에 있는 마을을 작업을 하고 있는데, 작년부터 못하고 있어요. 나라에서 하는 어사인먼트 때문에. 이명박께서 4대강을 기록해라, 한진중공업의 크레인 주목. 쌍용을 잊지말아라 등 4개의 어사인먼트를 주셨습니다. 숨막힌 실천이라는 것은, 뿜어내져서 나가서 되돌아오는 소통이라기 보다는 소통하고자 가슴앓이 하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소극적인 소통인 것 같아요.
제가 찍은 사진은 희망버스의 사람들만 보는 거에요. 식구들끼리의 잔치이지만, 식구들끼리도 어꺠에 힘이 빠지기 때문에…. 이런 작은 노력이라도 해야지 거친 호흡이고 속시원한 실천의 형태는 아니지만….   부채의식을 매해 새년 잊지 말자는 노력이 저에게는 실천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작업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작업이 많은데 각하가 주신 어사인먼트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슬라이드 소개)
용산작업을 ‘국화’라고 발표한 적 있어요. 몇일전 비운의 소식: 국가인권위원장이 연임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 이 자리에서 거꾸로 인권지를 들고 여기 참가를 했었는데, 저의 유일한 경제적 원천이 인권위원회인데요. 인권잡지를 제가 하고 있는데요. 그때 용산에 관한 기사를 두번인가 거절당했고, 세번째 실으면서 한 ‘국화’라고 제목을 넣었을 때 이 제목도 거절당했어요. 제목만큼은 거절당할 수 없다면서 편집장님이 오케이를 해주셔서….   용산에 엄청난 아픔이 있었던 날 아는 지인의 부모님 안 좋은 일로 부산 가는 길에 서울역에서 후배를 만나려고 했는데, 그 다음날 후배에게 안 좋은 일이 벌어졌었고. 제가 외면하려고 했었어요, 사회적 문제를 바라본다는 것이.
그러다가 미사60일 되는 날 나갔는데, 하얀국화라는 것이 저에게는 화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구요. 그 꽃잎이 우리의 가녀린 존재같기도 했구요. 그 사진 보내드릴게요. (‘국화’ 작품들)
그래서 저로써는 용산이 저희의 가족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상이 아니라 우리 안의 이야기 이고. 용산을 시작으로 다시금 사회적 시안에 관심을 가졌고 발걸음이 4대강으로 갔구요.
사진가들이 돈이 많이 들었어요, 이번에는. 왜냐면 부산, 평택….. 다 가야 되고 기본 농성이 1박2일이고… 물대포에 카메라 깨지고…. 아…. 옷도 사입어야지(웃음) 그래서 정말 현정권의 노하우가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제적 밑받침도 흔들어 놓는구나(웃음)
   작업하면서 좋았던 것은 후배들과 많은 작업들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지금 보여드리는 4대강 작업은 제작업들인데요. 아카이브 출판사에서 10명사진가와 공동작업. 시인들의 에세이집과 사진집도 같이 나왔구요. 사고가 계속 연달아 나다보니 못간지 2년이 되어서 사진가들이 죄책감을 느껴요. 자주 가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4대강 관련된 책 프로젝트가 들어가면서 저는 주로 부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10명 구성이 각각 다른데, 저는 강가에 기대어 농사를 짓는 분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사진보기 3분 정도)

“사람을 보라”
희망버스 2번째 것을 타고 내려가서 아카이브 출판사 편집장을 잡고 그간 촬영한 것을 보여주고 그것을 책으로 만들자는 의견을 내었다. 편집장과 함께 의견을 취합하고 같이 갔던 사진작가들과 촬영한 사진을 편집하여 보름만에 책을 만들었다, 그간 희망버스에 참가했던 사람들에게 응원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언론에서는 희망버스에 참가한 사람들의 폭력성과 의미없음에 대해 논했지만 그들, 참가한 사람들이 한편에서는 평화롭게 참여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책에 대한 수입은 각 사진작가에게는 5권으로 대신했고 나머지는 후원으로 되었다. 사진집이 유일하게 2판을 찍을 정도였다,
(사진보기 2분)

예 현장에서 만나는 사진가 들과 함께 실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을 보라라는 작업을 한 뒤에는 조금 지친 건 사실이다, 사실 긴 슬럼프가 시작되었다. 워낙 엄청난 일이었기 떄문에..
   제가 살아가는 방법은 제가 제 슬럼프를 그대로 받아드리고 급하게 해결하려는 마음은 없고 명박각하가 준 어싸인먼트를 다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고 싶고 작업하기 좋은 마음을… 키우고 싶다. 먹고 살기 이야기로 넘기면 산을 자주 가서 나물을 많이 캤습니다. 제비 꽃잎차를 재배했습니다. 재배 꽃잎차는 꽃만 꺽으면 아니면서 전차를 뿌리까지 먹어야 한다. 싹쓸이라는 것을 하면 안된다. 나물을 캐면서 절제의 미덕을 알게 되었다.
나물을 캐면서 절제를 하는 마음을 알게 되었다. 제비 꽃잎차를 먹으면 65세 할머니가 무릎베게를 한 것처럼 나른해지는 느낌이고 목련꽃잎차가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말리고 넖은 천을 두고 목련꽃잎을 많이 만지지 말고 말리면, 야한 노란색이 되면서 후덕한 차가 아니라 블란서 50대 여배우느낌이 나는 차가 된다. 오흐 4시에 마시면 좋고 11시에 마시는 차는 쑥차, 가진게 없는 사람은 저녁에 먹는 것이고 쑥차는 11시에 먹는다. 올봄엔 슬럼프때는 좋지 않은 행동을 했으나 올봄에는 나물을 캐로 다니게 되었다. 차가 6종류가 있고 9가지 효소들이 있다. 돌미나리 효소 등등 타인의 삶에 기대서 이야기를 담아오고 그것이 대신 확성기가 되어서 그것을 전해야 하는 사람인 것첢 마음 속에 어떤 부채감이 있다.  올해 안에 좋은 방법을 채택하게 되었다. 산에 가서 앉아서 몇시간 동안 명상과 책을 보는 사람이 신기했는데.. 그정도로 다혈질이고 힘들엇다. 나물에 기대어 살 수 있었다.(울음) 지침을 해소할 수 있었다. 힘든 삶을 살 수 있었다. 공짜로 자연을 받아오고 그것 떄문에 마음에 힘들어있다. 인권위에서 150만원 격월 75만원 35만원 정도 받는 것 같은데 미리 말하지 않으면 마음을 비워서 온다. 에라이 보시나 하자라는 생각을 한다.
개인전 3변을 했는데 1번은 작품을 팔았고 1번은 시리즈는 다 기증했다. 어떤 작품은 에디션이 다 팔린 경험이 있다. 엄청난 스폰서는 아니지만 간간히 스폰서가 나타나기도 한다. 200만원으로 프랑스로 유학가서 알바생활이 시작되었고 알바는 콩나물키우기부터 캐디 등을 해본 경험이 있다. 세계는 넓다. 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긴급 사진으로 한 적이 있다. 원고로 50만원을 한 적이 있다. 계란으로 썩은 바위… (500만원 정도 .. 비디오 값 갚아야 한다. (알바이야기)
프랑스 알바하면서 돈을 벌게 된 사례 이야기를 하자면 루이뷔통 가방브로커 아저씨를 알게 되어서  호텔에서 묵으시는데 짐을 다 가져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브로커 아저씨에게 방을 빌려주고 돈을 버는 일을 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알바를 하고 심지어 루이뷔통 가방을 받는 브로커 일을 직접 한 적도 있다. 브로커 아저씨는 유로에서 복장이 안되니까 옷을 사야 한다는 등 먹고 사는 일에서 가끔 나쁜 일도 하게 되고 먹고 사는 것은 일은 어려운 것이다.

(5분 휴식)

김희연 저는 김희연이라는 이름을 안쓴지 10년이 넘었어요. 팅이라고 불러주세요. 사는 얘기하라고 해서요. 저는 원래 10대까지는 대책없이 살았어요, 학교에서는 모범적이고 응원단장 맡아가면서… 수업시간 내내 창밖보고 소설책보고…. 고등학교때 자율화가 됐던 해였는데 저희 학교가 시범학교였거든요. 거기서는 교복도 잘입고.  자율학습 시간 때에는 책걸상을 화장실에 넣고 좌석 하나 없애서, 사복 싹 갈아입고, 극장가서 주윤발이 한창 유행하던 때 있다가. 그런데도 대학교는 시험 보고 붙는 걸로 알고 시험봤다가 떨어졌죠. 그때가 수능세대가 아니라 전기떨어지고 교과서를 다 팔고 강냉이로 받았어요(웃음) 집에서는 다음 후기시험을 볼거라 생각했는데, 제가 그러지 않았고. 명지전문대라고 있었는데… 아버님이 부탁을 하셔서 할려고 했는데, 학교 사인 받는 원서를 미처 준비를 못해서. 원서를 잽싸게 접수했는데, 그 학교가 됐구요.
학교 들어가서는 전문대이니까 동아리가 별로 없더라구요. 극회라는 연극 동아리가 있길래, 동아리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아무도 아는 척을 안하는데, 거기서 반했어요(웃음)
뭔가에 몰입하고 있던 사람들의 눈빛을 처음 접해서, 그 에너지에 반한거죠. 그날부터 동아리 들어가서 졸업할때까지 거의 수업을 안갔죠. 다행이 동아리 지도교수가 저희 지도교수여서… 출석일수가 모자라니 취업증명서를 가짜로 가져가서 졸업을 했어요.
그때부터 연극을 막연히 하고 싶었어요. 제가 여자 전문대학교를 나와서 학부 내내 남자역할을 했거든요. 제가 여성적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보시다시피(웃음).
제가 남자역할만 해가지고, 여자연기가 힘들더라구요(웃음)
알바를 뛰다가 국립극단의 연극프로그램을 졸업하고 대학로에 우연히 23살에 입성을 하게 되었어요. 저녁에 페인트가 떨어져서 대학로 바닥을 뛰어가는 데 그게 너무 행복했던 거에요. 그 당시 대학로는 프로들의 메카였으니까. 그 당시 제가 있었던 팀이 집단이 개인한테 가하는 폭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연극하는 팀이었는데, 저는 사회 돌아가는 거에 관심이 없었는데. 그 주제로 작품을 올리다보니, 하루종일 김광석 노래만 듣고… 신문에 난 기사들을 아침부터 세미나 하고…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주제로 하는 이들이 일상은 사실 그렇지 않았던거에요. 그분들의 삶이 굉장히 괴리되어 보이더라구요. 저는 쫑파티만 끝나고 이제 그만 두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공포스러웠던거에요. 저처럼 어떤 집단에서 나와서 막내로써 나와버린.... 저는 원래 수다스러운 사람인데, 그때 6개월동안 말수가 없었어요. 또 다른 알바가 들어왔는데 ebs에서 착한 삐에로 역할 이었어요. 거기 크라운 역할은 말을 안하고 마임이라는 장르로 한다는 거에요.
극단 사다리라는 곳이 유일하게 국내에서 마임을 접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우연히 또 거기 펑크가 나서 제가 들어갔는데 너무나 재밌었어요. 말을 안하는게 아니라 마임이라는 것은 말을 아주 소중히 하거든요. 그 극단은 알고보니 어린이 가족극을 전문으로 하던 단체였어요. 사실 당시엔 아동극은 굉장히 웃기게 생각했거든요, 연극판에서는.   아무튼 그러다가 호랑이극이라는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온갖 오브제, 신체로만 표현을 하는데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여기서는 절대로 나가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멘토 유홍령? 선생님을 만났어요. 거기서 배울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29쯤 되었는데 처음으로 내가 연극 왜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선배들이 그 당시 얘기했던 고민이 제가 그 선배들 나이가 되니 똑 같은 거에요. 5년 전 7년전 고민이 똑같았구요. 선배들의 상황을 보니 여자들 같은 경우는 연출로 빠지던가, 집에 돈이 많아서 그냥 하던가….  그런데 어느 조건에도 저는 부합되지 않았어요. 제 소원은 당시 무대 위에서 죽는 거였는데. 또는 한국연극지에 내 단독 인터뷰를 싣던가(웃음) 아무튼 그 고민들이 똑같다는 것에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뛰어난 배우, 연출이 되는 게 내몫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망갔어요. 동해바다로 가서 2월 말이었는데, 고성의 부둣가에 봄 되면 그물을 다시 만질때에 일하는 할머니 옆에 있다가 밥을 같이 먹었어요. 바다는 저에게 탈출 같은 이미지였는데, 할머니에게는 삶의 터전 같은 치열한 곳이었던 거에요. 그렇게 대학을 떠나왔어요.    
그래서 극단에 이야기 하고 극단을 떠나왔다. 연극판에서 떠나오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머리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니 손님들이 관객으로 보이는 생활이었다. 하자센터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연극할 수있는지 제안이 되었다. 프로배우들이 청소년들이 하는 연극을 하자 부센터장이랑 의견을 제안했다. 10대를 만났는데 아무도 안왔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을 때 판돌이들이 아이들이 안왔죠. 라는 태연한 상황이 제연되었다. 30분 이후에 아이들이 올것이라고 이야기를 들었다. 첫 시간에는 어처구니가 없었고 나름 연극하는 사람으로 너희들의 를 잡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으나 프로의 세계와는 먹히지않았다.
청소년들이 다 올때까지 안하겠다 라고 선언했는데 사실 12명의 청소년이 나의 삶을 바꿔 놓았다. 처음 연극 시작할 떄는 1~2명을 대상으로 관객을 두고 연극한 적도 있따.
극장에서 일했을 때 관객이라는 존재는 객석을 다 채운 물건 같은 존재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자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이 다시 관객을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무엇인가를 시작해서 끝을 낸적이 없는 청소년들을 데리고 끝을 내는 작업을 했다. 알바를 했기 떄문에 계속 만나는 기회를 잡기 시작했고 지속적으로 청소년을 만나게 되었다. 관찰력을 가진 배우들이 연기하는 인물을 다 이해해야 하며 삶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데 그 때 학부모와 가정을 만나고 사회를 만나게 되었다. 경제 정치 사회에서의 나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상당부분 사회에 영향을 실감하게 되었다. 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 영어고 그 집단에 끼어들어 의견을 제시하기도 어려웠다. 회의가 실제적으로 어려운 것이었다. 작업장 다니면서 노리단이 창단되었따. 사실 6개월 정도하는 것이고 극단에 재계약 하러 가는 시기와 맞물려서 극단장과 이야기 했을 때 나이 많은 배우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나이 많은 배우들을 결혼을 하거나 남성배우들을 대부분 장사를 하게 되는데

박정애 장사를 잘하는 이유는 뭔가요?

김희연 배우들은 사람의 비유를 잘 맞추는 것 같아요. 장사들이 사람들을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배우….들에게는 적합한 것 같아요.

(다시돌아와서) 이 시기에 다시 극단에서도 다시 돌아와서 일하는 것보다 이제는 다른 삶을 전환되는 사례를 찾고 있었고 스스로도 공연판을 떠나온지도 오래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돌아갈 곳도 없었다. 언제 망할지 몰랐기 때문에 하루하루 공연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좋았다. 하자 작업장에서 단기로 시작했던 노리단이 3~4년이 지난 후 70명이 되었고, 작년부터 몽땅이라는 것을 창단하였다. 몽땅은 다국적 연극팀이다. 몽땅은 다국적 팀인데 사실 다문화라고 이야기 하는 순간 사람들을 볼 때 거지처럼 보이는 어떤 지점이 있다. 한국사람이 그들에게 뭔가를 줘야 할 것 같고 국가 단체에서는 이런 배제당한 다국적인들의 어려운 점에 보다는 그들에게 굿 뉴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반대로 그들이 만났을 때 유쾌한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주고 일단은 명랑하고 유쾌한 팀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저의 삶에서 먹고살기에 대해 이야기 하면 하나는 대책없이 살았다. 대책없이 살고 그랬더니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떻게도 해결되기도 했고 막벌기도 하고 나쁜 짓이 있다. 기업체 대기업가서 사회적 기업에 대해 강의 조금하고…..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에이씨발정신” 이있는데, 갑자기 어딘가 확 올라오는 오기가 있다. 해봐서 안되면 인정하는 어떤 정신이 있다. 저에게는 이런 정신이 2가지가 있다.
마지막으로 예술이라는 말이 어렵고 힘든 어떤 지점이 있다. 그래서 다른이들에게 나를 표현할 때는 예술 노동가로 표현한다. 예술로 표현되는 무대에 내가 있을 때, 예술을 통해 노동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생각에 연극하는 것은 타인에게 무조건 박수를 받는 그 고마움.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박정애 어쨌든 치열한 삶의 결실이 있고, 그래서… 근데 나쁜짓이 뭔지도 이야기 듣고 싶어요. 살면서 두려움도 극복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도.. 저는 마지막 발표자인데, 한국여성사 공부했어요. 아버지가 때리고, 그래서 가출을 했어요(웃음). 마음이 괴로운 상태에서 한 소년이 제 눈에 들어왔어요. 어떤 쪽지를 보내서 제가 찍었어요(웃음) 사랑이 너무 하고 싶었거든요, 저는 쿨하지 않고 질척한 편이에요. 그 소년이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친구가 다큐를 하던 친구였고 국가보안법에 대한 것이 세대갈등의 불씨가 됐다 하는 그런 남자가 흔히 할 수 없는 생각에….. 다 이뻐보였어요(웃음) 바퀴벌레 한쌍입니다.(웃음) 이 친구가 다큐영화만 하고 싶어하고, 일인작업이다 보니까 외골수였고, 6년 연애를 했는데….. 서로 마음을 다 밝히지 않고… 그런게 6년이나 갔던거죠. 그동안 국가보안법과 학습지교사들에 대한 다큐를 찍었던거죠. 다른 다큐감독들은 결론이 이미 있기 때문에 빨리 찍는 반면, 이 친구는 굉장히 오래걸려요. 하여간 서로 못헤어져서 6년 갔다가, 저는 아이가 너무 갖고 싶었어요. 그래서 28살 때 더 이상 아이가 없이는 아이를 못낳을 수 있겠다 해서 강요를 해서 결혼을 했죠. 아이만 원한다는 편이었는데, 이 친구는 관계에 있어선 서투른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이 친구 영화가 굉장히 아날로그적이었어요. 그런 촌스러운 감성이 저는 좋았구요. 그런 작업이 주는 따뜻함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구요.
그리고 그 친구의 친구들(영화과)을 보면, 영화들이 모두 자아에 대해서, 또영화 끝나면 ‘사랑하는 부모님께 바친다’며…. (웃음) 그 뭔가 특유의 척하는 게 있다 생각했는데, 이 친구는 그렇지 않아 결혼을 했구요. 또 제 결정으로 아이를 낳았어요.
제가 이 친구를 지원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제가 시간강사라….(웃음) 아무튼 양쪽부모로부터 지원을 받을 상황이 안되다보니 이 친구가 1년동안 아이를 보고 있어요. 그래서 작업을 거의 못하고 있구요. 사실 저도 시간강사하면서 애기가 생기다보니 속물적인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도 공부를 거의 못하고 그 친구도 작업을 거의 못하고 있는 상황이구요.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하니 오고싶어하기도 하고 심란해하기도 하더라구요.
아무튼 1년 버텼는데, 이 친구는 푸른영상에 있거든요. 저는 가족을 이룬게 욕심인가… 길을 모르겠고 불안하구요. 무엇보다 가족 때문에 작업을 못하게 하고 있으니까요. 올해 마흔이고 아이가 돌인데, 더 준비가 될때를 기다린다면 아기를 못가질 것 같아서요.

황금선 갑자기 상담해야 할 것 같아 (웃음 청중단)

박정애 나에게 과분한 욕심이지 않았는가 아기 돌을 맞이하긴 했다. 도움이 아줌마를 쓰는 이야기도 해봤는데 돈이 많이 드는데 뭔가를 했을 때 돈을 버는데 어려워 하고 어린이집 보내는 문제도 처음부터 아이 아버지가 키우다 보니 육아문제 도움이 쓰는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고민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황금선  작업은 끝났엉?

박정애 예 천막이라는 영화였고 학습지 선생님과 굉장한 밀착을 가지고 있고 어떤 곳에서 는 빈곤층에 속해 있으니까 이 친구는 학습지 선생님들 사이에는 부자로 통하고 있다. 이 분들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말할 수 있는가. 그 부분에 대해서

호프집을 조직해볼까? 하고 이야기 해봤는데(웃음) 관계 맺는 것에 어려움을 보이고 있는 남편,. 그와 함께 살아내고 있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으나 한국의 학력사회에서 살아지더라. 지금은 버티고 있는데 이친구가 허심탄회하게 같이 있었다면 공감이 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남편은 모를 것 인데 여기에 왔다면 우리의 문제를 생각들을 알 수 있었얼 것이다.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렵다. 연구자로서 삶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어렵고 같이 왔던 분들이 모두 민주적인 가정에서 등등 여성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자신의 삶이 초라해지기도 했다. 이런식의 토크콘서트의 취지는 어떠한 부분에 나는 이렇게 살아내고 있다. 이런 경계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면서 한편에서 저의 고민이 부끄럽기도 하고 한 사람들의 질척함 지긋지긋함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었고 저의 발표를 마치도록 하고 이야기를 듣다보면 더 듣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질문하고 싶은 것도 있는데 토크콘서트를 진행하는 소장님들께 설명을 들어볼까요

소장님 저는 이 3분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바로 질의응답으로 하지요

김모래 저 질문 있습니다. 나쁜알바와 좋은알바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황금선 모든 알바는 나쁜 알바와 돈의 유혹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 차선에서 저의 삶에 긍정의 역할을 줬다.
제가 가고 싶은 과를 지원했다. 재수를 해라 라는 말을 했는데 그냥 다니지 뭐라는 7돈을 갚아라 라는 말을 들었다. 입학금까지 70만원을 냈어야 했다. 입학금 70만원을 벌기 위해 아는 친척 언니가 골프는 치지 않은데 골프옷을 입고 있었다. 백현동은 아름다운 동네 였다. 판교는 지금 … 그 떄는 진짜 아름다운 동네였다. 좌우로 남녀탕이 나눠졌고. 몽둥이로 두두리면 빨래가 하얗게
되고 (인도에 가면 옷을 빨 때) 언니들이 양말을 선물로 주고 언니들에게 캐디로 일할 수 있게 부탁했다. 대학생 알바. 캐디가 없었는데 언니가 캐디는 사람들이 술집여자로 봐 라고 말했다. 어찌 되었든 언니들이 캐디 마스터에 이야기를 해서 주말에 캐디일을 하게 되었따. 그 때 손님이 주는 5천원 회사가 주는 돈 5천원 하루에 나가면 만원을 받았따. 90년대 부터는 캐디 학원이 생기면서 또다른병패가 생겼고 구옥희 캐디 출신 구옥희 골프선수를 키운 골프장 2번째 유명한 이유는 쟈니윤이 2명의 캐디를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캐디의 번호대로 일을 시작했는데 7시 정도 캐디일을 했어. 명지여고 명지전문대 뒷집에 살았다니까(있다가 모이자고)
친절하게 골프백을 주고 별이 그려져 있다. 짠돌이 백.  짠돌이 백은 5천원만 주는 백이다.
스님 목사 신부 자기 내 들끼리 온 손님들이 올 때 별이 있는 백을 주었다.
(물주 없이 올 때라는 것이지.)
빨리 갔다가 오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다. 투 백 나갈 수 있나요 라고 하면 2만원을 할 수 있다. 3천원을 빼줘요
아니 일을 할 때, 골프채를 던지기도 했다.
회사는 투백나간다고 손해보는 게 없으니까. 골프장 올라갈땐 차 한번도 안 태워주는데, 화가 나는 건 내려갈땐 차를 자꾸 세우는 거에요. 그때부터 기분이 너무 나쁜거죠. 언니들이 골프옷 입는 것도 화가 나고. 어느날 언니들이 보통남자들을 못사귄다는 걸 알았어요. 동네총각들이 우스워보인다는 거죠. 그러다 노처녀가 되어가고. 손님들이 취업을 시켜줘도 근데 다시 돌아온다는 거.
여성과 사회, 인간과 사회, 철학과 사회 이렇게 세미나 수업이 각 학년에 대학에 있었는데. 10대 일로 젊은 강사분이 들어오셔서 매춘에 대한 강의를 하셨는데, 그때 캐디언니들 때문에 극도로    제가 분노해있던 때에, 고급창녀들에 대해 얘기하는 거에요. 바로 그게 나쁜 아르바이트.
저 또한 끊임없는 돈의 유혹. 저도 어느날 백에 별이 있으면 받기 싫어지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제가 변화한다는 게….. 세미나 하는 10명이 다 나한테 책임지라는 거에요.

이세상에 ‘공정’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래서 모든 아르바이트는 그런 지점들을 거쳐가야 하는 것 같구요. 루이비통 알바도 마찬가지지요. 이번에 저축은행으로 부속된 사람이 제 제자에요. 평생교육원에서. 그 분이 저랑 5년정도 알고지냈는데, 예술적 재능이 천재적인 분이세요. 제가 그 분 전시 디렉팅하는 것이 나쁜일이 되는거에요, 그 사람이 구속되기 전에는 정말 난리도 아니었어요. 지금은 페이스북에서 비난이 쇄도하고, 전화하고. 그러니까 이 세상에 많은 것들은 내 안에서 이미 갈등이라는 엄청난 혐오작용이 일어나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몇가지로만 잣대를 들이대면.. 뭐 제가 캐디했던 것이라든지..    제가 예를 들어 전시하나 매니지먼트해주면 천만원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분들한테 해서 아이패드라도 받으면 아이패드 받은거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거죠. 아무튼 나쁜짓이라는 것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해요(웃음)

소장님 20년만에 뉴욕에서 온 이건정씨 얘기 좀 해보세요.

이건정 전 brooklyn에 오래살았는데요, 먹고사는 문제에 부딪힌 예술가들을 위해 flea market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예전엔 골동품을 ‘파는’것이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네트워킹을 만드는 장’으로 바뀌었죠. 그리고 환경운동과 더불어서…. 고기 같은 것도 직영해서 파는…. 근데 고기 팔면서 많은 작품들을 거쳐가게 되는. 그런 매개가 있어야 할 것 같구요. 아무튼 예술이라는 것은 무엇을 하든 자부심이자 삶의 업보인 것 같고. 저는 예술은 또 아무것도 아닌거라 생각하구요. 누군가에게는 삶의 일부분인거고 또 어떤 사람들한테는 예술과 삶이 분리되는…. 아무튼 예술의 중심으로 나가 있으면 예술이 아닐까
.
박정애 지금 삶과 예술이 분리되는 문제를 얘기하셨잖아요. 돈을 많이 주어도 개운치 않고.

김희연 저는 개운해요. 저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았거든요. 아버지는 너무 열심히 일했는데 왜 간할까가 큰 고민이었어요. 연극할때도 판매를 해야 하는데, 만든 창작자가 돈을 올리는 얘길 하면 납득이 안되는 거에요. 사회적기업을 하다보면, 예술가들이 예술을 통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몽땅이라는 것이 1년이 다되어가는데, 뜻이 좋으니 다 재능기부를 해달라고 해요.(일동 동의) 예술이 갖고 있는 아이러니라는게….. 저는 단가를 그냥 정해놔요. 그러면 다들 기가 막혀하세요. 창작공연이라 곡도 연주자들이 모르니까. 근데, 높은 돈을 주고 구입했기 때문에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와, 내 스스로 정당화 만드려는 두 가지 심리가 공존하는 것 같아요.
저는 예술을 노동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는게…. 예술이 기능이나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누가 그 가치를 말하기 보다는 제작자가 그 가치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이라는 말을 뺀 이유는 너무 싸움이 많이 나서에요.
저랑 같이 연극했던 친구들이 ‘너 작품 안해?’라고 해요. 저는 작품, 창작을 하고 있는데.
옛날에 박원순시장님과 이걸로 싸운 적 있어요. 뚝섬에서 뭐하는데 재능기부로 공연을 해달라고 하는거에요.

소장님 근데 황금선작가님은 그렇게 단가 정해놓는 걸 않하지 않나요?

황금선 저는 그냥 풀뽑고…(웃음) 저는 못팔아서 못파는게 아니라 그냥 사진을 판다는 걸 원치 않아요.

키워드 : 고도의 저항력이 발동된다. 안받을 수 없는 인간관계 나쁜 짓 나쁜 행동 다양한 스펙트럼  예술이 별거 아니다. 삶의 업보 나는 예술가로 스스로 자처하고 일은 일대로 하고 삶에 녹아 있는, 여기저기 뭔가 하고 있는 사람들이 예술의 중심에서 다시 모이는 이 지점
먹고살기와 예술활동에 관계에서 과연 예술활동이 먹고살기에 가능한 것인가? 먹고살기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또 대기업에서 볼 수 있는 것.

한금선 작가는 뭔가를 판다는 것이 …. 저는 못팔아요 그냥 저는 풀 뽑는게 편해요.

김희연 저는 혼자 작업할 때 못했거든요.

한금선 근데 저는 혼자 사진을 판다는게 편치 않아요 .

소장님 그럼, 그게만약 정책으로 간다면?

한금선 저희는 생산자로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저는 제 작년에 경기도 프로젝트 이명박 어싸인먼트 월급을 주시면 되요. 어떤 만약 국가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 입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진가들이 각자 자신의 시각을 가지고 사안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진행된다면…. 저희 사진가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작업을 하면 얻어먹고 살거든요. 가장 좋은 것은 그런 프로젝트를 할 때 돈을 쓰지 않고 놀 때 돈을 쓰게 되는데 쓸데 없이 개 데려다가 쓸데 없이 돈을 쓰게 되는데, 저는 그 때 경기도에서 농업을 맡게 되었는데…  경기도 교육, 산업현장 분야 등등 10명정도가 기록하게 되었는데 만은 돈은 아니지만 3달정도 천만원이 들어오면 카메라 업그레이드 가능하게 해서 어떤때에는 1년에 3~4개 정도 프로젝을 했을 때 돈을 벌기도 했다. 파리에서 들어와들 잘나갔을 때(웃음)

올해는 재능기부만 계속하고 있다. 재능기부는 해도해도 너무 많은 것 같다. 사진판에 쌈닭 같은 사람인데 원고를 안주는 기업들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전에 했다는 거죠 하지만 그들은 이런 일을 했을 때 네임벨류가 있기 때문에.. NGO단체 에서 재능기부를 했을 때 세금정산이 가능한지
제가 한말은요. 재능기부의 단어를 자주 사용하지 말아라. 너희도 월급을 받으려고 하지 말아라. 사진관 인건비를 넣어라 이거죠. 사진쪽이 정말 심각해요. 조세현, 김중만이 무료로 빵빵 찍어주고 하지만 겉으로만 공짜지, NGO한테에서도 돈을 받고 간다.

김희연 맞아요, 그런데 많은 것 같아요. 인건비는 없고 대신 연출인건비는 없는데 좋은 호텔방이나 호텔의 맛있는 밥을 준다는게! (웃음)

황금선 맞아요, 저는 원칙을 만들고 싶은 거에요. 인터뷰 옵니다. 내 시간 내 작품도 뺏어간다.,아니 왜 국가를 위해 일한다 하면서 왜 삥쳐가냐.
원고로 주는 꼭지 몇꼭지다. 사진전을 홍보하러 간다그러고 잡지에 20장 다깔아. 그럼, 누가와 ~
사진을 팔고 싶지 않고 사회가 가치있게 기록을 남기려고 할 때 사진을 기록할 때 공기처럼 공존.

(일동 박수)

사회적 기업 패널 제 아들이 힙합랩퍼인데 항상 “어머니, 민주화 기념화 사업회에서 공연해달라고 한다. 어떡해요?”라고 물어요.제가 말하길, “환경재단이든 뭐, 하지마. 하지말아라. 꽁짜로 해달라고 하고…. 가수 안되도 좋으니까.”

사회적기업 패널  그래도 가수들은 챙겨줘 인디힙합은 앞에 인디가 붙어서 안해주는 것이라. 어디 뭐 감정마을?
황금선 김희연 감정마을? 감정마을은 가도 되는데….

사회적기업 패널 아, 이게 창작노동이잖아요. 밤과 낮을 거꾸로 사는 데 곡하나 만든다고….. 아들이 전교1등도 하고 그랬는데, 저희집은 대학 보낼 돈이 있으니까….. 기반이 다 되어있으니 서울 내 어디 대학만 가라고.. 취미로 다니면서.
이들의 창의력을 인정해주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대학이 어쩌냐 저쩌냐 하는데 취미로 다니면서 우리애를 생각해 줘서 다니는 힙합으로 타협을 보고 있는데,
그래도 조금 잘나가는 데도 그런게 있었다.,

김영주 제가 한마디 할게요. 제가 듣는 고민을 4주차 고민을 제안하게 되었는데 창작활동이 예술이 되는 것은 좀 다른 문제 인 것 같다. 창작활동이 예술가로서 고급예술로 가는 것이 아니라 너는 예술하는 사람이잖니 열정노동을 소모되는 어려움이 있고 모든 삶이 서로에게 빌어먹기인거 같은데 고급예술가들이 아니라 자기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무대를 만들어 냈는데. 잘 빌어 먹고 잘 사는 자존감이 상하지 않으면서 잘 빌어먹기하기가 어려워졌다. 젊은 예술가로 호명되기도 어렵고 잘 평가되지도 못하고 비물질 노동이 늘어나고 있는데 창작의 고통이 상상이 되긴 하지만 자발성이라는 것을 통해서 노동자성을 지워지게 되는 것 같다. 자존감을 키워야 하는 문제.

박정애 글루미 선데이영화에서 주인공이 자살을 하게 되는 것이 자존심이 다쳤을 때  자살을 했다 자기세계에 대한 의지가 있는데 가난함을 감수하겠는데 그것이 아니라 에너지 쪽쪽 빨아 먹고 피패해진 것 때문.

신경아 서울시정책전주예술 영향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정권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을 풍비박산 남. 미디액트를 공간을 열어보면 정책적인 생활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죠. 그러니까 제발 그런 젊은 층들을….  최소한의 그런것들을 서울시가 많은데 젊은 친구들 40~50대 방식으로 재능을 밥굶을 까봐 걱정한다.
자기 커갈 수 있는 인큐베이팅 할 수 있는 2~30대 예술하는 것 자기 것을 팔게 하는 게 문제에요. 그러니까 인큐베이팅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황금선 정부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요. 인문학이 죽었다고 하다가 최근에 인문학이 유행이 되고 있어요. 그러면서 엄청난 정부 돈이 들어오면서 사실은 인문학이 더 죽어버렸어요. 예술 쪼 지원이 아니라 예술가 스스로가 노동자로서의 의식을 가져야 하구요. 제가 아는 클래식음악가가 ‘너도 8시간 정도는 일해야지’라고 하는게, 아직도 기억해요. 스스로 조직화해야 하구요. 비정규직조차도 못되는 존재가 예술가거든요. 자존감을 다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데, 자존감을 옹립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거에요. 제가 프랑스에 있을 때 길게 취재했던게, 문화예술 공연에 2차 3차 4차 스탭들의 파업이 들어갔어요. 다들 보셨겠지만 레드카펫 거부하고 그런거…. 그게 실업수당 퍼센트 떨어지고 보험료 적용대상이 떨어지고 그런건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잖아요. 예를 들어 제가 농사하면서 손을 계속 다치고 있는데, 사진을 못찍는다면 보험수당이 안나온다는 거죠. 예를 들어, 제가 파리에서 일할 때 어디 다녀와서 작품을 잡지에 실을때에, 비행기 티켓 값이 와요. 일을 하는 것에 포함된다는 거죠.  

김희연 덧붙이자면, 저는 인큐베이팅에도 우려가 되요. 지금 시대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저희 시대의 어려움이 지금것과 같다는 거죠.

황금선 근데 예술가들도, 배고파야지 예술이 나온다는 착각 벗어나야 하거든요.

김희연 완전 벗어나야죠.

황금선 본인이 부르주아같다는 남편…저는 작업의 본질은 가슴에 있는 거지 주머니 동전에 있다고 생각 안하거든요. 그러니 젊은 친구들이 그 본질을 좀 더…. 저 같은 경우는 일대일로 벼랑끝에서 그러는 스타일이에요.

김희연 자존감 말씀하셨는데, 그 생각할 시간이 없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연극 때문에 여러 시간을 보냈거든요. 말씀드린 수많은 나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러면서 자존감을 지킬 수 있었던 거는, 이 시간을 통해 다음 작업 2시간을 할 수 있었다는 거에요. 제가 했던 알바 중에 무면허 간호사도 했었는데, (웃음) 그때 제가 고민했던 건 환자들이 아파서 내는 신음 소리 듣고 흉내냈던 거에요. 그러니까 상처를 안 받거나, 내 뜻을 펼치기 위해 주변환경이 도와줘야 하는 것도 있지만 상처를 좀 받아보세요.
젊었을 때 다치고 깨지면 나중 힘들 때 기댈때가 생겨요. 전 그 두가지가 같이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황금선 이걸 어떻게 해야 제도적으로 직업군 안에 들어가서….. 이게 ‘비국민’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전쟁이 나면 비국민을 버리고 가는 그런…. 세금을 내지 않아도 돼요. 대신 국가가 책임도 안 내어주는. 오랑캐 자손들 같은…. 우리의 수준이 비국민이에요. 세금을 내면서.

김희연 벌써 10시가 다 되었네요.

사회자 일단 마무리를 해야 되고…(웃음)

소장님 저는 20대보다 40대가 더 걱정이 되요. 가난하게 늙어가는 40대가(웃음) 어디가서 그런 얘기 하기도 참 어렵구요.

사회자 인턴소개 및 이번 주 행위예술 공부한 사람으로써 주제 이야기.

황금선 선생님 몇 작품 더 볼수 있을까요

김모래 저는 청각장애인들과 관련해서 일을 했었는데, 그분들은 ucc나 표현으로 창작활동할 수 있는 존재로 맞추어져있는데, 예술이라는 게  비주류, 약자를 대변하는 거로 대표된다는 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도구로 표현된다는 게 문제가 있어요.

황금자 맞아요. 무슨 치유, 테라피로 이용된다는 거. 제가 또 전공이 심리학이거든요.

(잠시 동네탐방에 대한 광고- 김영주 국장님)

(황금자 선생님 작품 감상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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